작성일 : 07-05-01 09:27
“이제 교육 현장을 바꿔야죠”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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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석 258인 중 찬성 257인, 기권 1인으로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안 대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임채정 국회 의장이 의사봉을 세 번 힘차게 내리치는 순간, 국회 의장의 맞은 편 위쪽 방청석에 앉은 장애인 부모들의 표정은 다채로웠다. 환하게 웃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얼굴을 붉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고,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표정으로 어디론가 전화부터 거는 사람도 있었다. {FILE:1} △ 국회 본회의에서 장애인 특수교육법안이 통과된 직후, 장애인 부모들의 모습.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본회의에서 여러분들이 기대하는 법안이 처리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뻐하는 마음은 압니다만 본회의장에서 박수를 치거나 소리를 치면 저희가 곤란해집니다. 삼가 주십시오.” 본회의가 시작되기 전 본회의장을 지키던 국회 경위가 했던 당부 때문이었을까. 장애인교육권연대 소속 장애인 부모들과 교사 등 본회의를 방청한 80여명은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안이 가결되는 것을 확인하고, 곧바로 본회의장을 빠져 나왔다. 본회의장 앞 복도로 나온 이들은 그때서야 맘껏 서로를 껴안고 소리내 환호하기 시작했다.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며 30일이 넘게 단식해온 최준기 경남 사천시장애인부모회 회장은 두 손을 치켜들고 “만세”를 불렀다. “말할 수 없이 좋아요.”, “드디어 됐네요.”, “이렇게 쉽게 될 것을.” 부모들의 눈물 섞인 감탄사가 계속 이어졌다. {FILE:2} △ 장애아 부모들이 눈물을 훔치며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법 제정을 지켜보기 위해 국회를 찾아온 장애인 부모들은 본회의장 밖에도 있었다. 30일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안 통과가 유력하다고 알려지자 장애인교육권 소속 부모 150여명은 법제사법위원회가 열린 시각인 오전 10시부터 국회 본관 앞에 와 있었다. 이 중 일부가 본회의를 방청했고, 본회의장에 들어가지 못한 부모들은 국회 본관 후문 쪽 면회실에 설치된 국회 TV로 법안이 처리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난 2005년 시작한 장애인 교육주체들의 지난했던 법 제정 운동과 다르게, 장애인 특수교육법안은 오전 11시 30분께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고, 오후 2시 50분께 국회 본회의까지 순조롭게 통과했다. 힘들게 싸워온 기억들이 떠오른 것일까? 국회 본회의를 방청하고 나온 박문희 서울장애인부모회 공동대표는 ‘조금 허망 하더라’고 했다. “국회에서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을 우리는 밖에서 그렇게 힘들게 해야 했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어쨌든 좋기는 하지만 조금 허망한 마음이 드네요.”라고. {FILE:3} △ 본회의 통과 소식에 환호하는 부모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그동안 장애인 부모들은 장애인교육지원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만 2번, 그리고 천막농성, 점거농성, 삼보일배, 삭발까지… 할 수 있는 투쟁은 다 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던 30일도 장애인 부모와 특수교사 등 3명의 단식농성이 30일 넘게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 바로 며칠 전인 24일엔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로 법안 처리에 늑장을 부리는 국회를 압박하기 위해 장애인 부모 40여명이 국회 본관 정론관 앞에서 기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문희 공동대표는 24일 “오늘도 저번(24일 기습시위)처럼 그렇게 해야되려나하는 걱정도 했어요. 단 한 번도 쉽게 해결된 적이 없었잖아요. 내심 걱정했죠.”라며 다행스러워했다.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한 후, 장애인교육권연대 소속 회원들은 국회 본관 앞에 모여 축하 잔치를 열었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눈물을 그치고 떡을 나누며 잔치 분위기를 즐기고 있는 가운데 이순애씨는 여전히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들이 자신에게 건넨 말이 자꾸 생각이 난다고 했다. “우리 아들은 아직도 내가 이렇게 투쟁하러 나오면 ‘엄마 오늘 잡혀 가면 안돼’라고 당부를 해요.” 이순애씨는 2005년 10월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장애인 교육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간 적이 있다. 이날 난생처음 경찰에 잡혀간 엄마보다 더 놀란 사람은 아이였을지도. ‘애 엄마’가 ‘웬 시위냐’고 할 지 모르겠지만, 뇌병변장애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아이의 ‘엄마로서’ 그녀에겐 그럴만한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 “아이를 입학시키려고 처음 학교에 갔을 때 학교에선 이런 아이 받아줄 수 없다고 이야기했어요. 그 때 제가 특수교육진흥법에 장애인도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법을 들이밀었는데도, 학교에선 편의시설이 없어서 안 된다 그러면서 이러저러한 핑계를 댔어요. 결국교육청을 찾아가서 입학 이야기를 하고 따지고 해서 결국엔 문제가 해결됐죠.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어요. 우리 애한테 장애가 있다고 체험학습에서 빼는 일은 지금도 있는데, 이제 이 법이 만들어졌으니까 이 법으로 한 번 싸워 보려고요.” 이씨가 이야기했다. {FILE:4} △ 국회 본관 앞에서 축하잔치가 열렸다.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하지만 이순애씨가 그동안 자기 아이 하나만 잘 키워보겠다고 투쟁해 왔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씨는 아이가 다니는 학교 건물에 여전히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내 아이 말고 다른 아이들도 그런 불편을 계속 겪을 거 아니에요. 그래서 지금도 학교에 엘리베이터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이씨 아이는 올해 6학년으로 내년이면 그 학교를 졸업한다. 이씨는 “장애인도 사람이고, 인권이 있는데, 인권이 없는 인간으로 취급받는 게 너무 힘들더라고요.”라고 덧붙였다. 다른 부모들도 비슷했다. 박문희 서울장애인부모회 공동대표에게 왜 장애인교육지원법을 만드는 운동을 했냐고 물어보자, “우리 아들은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이라서 바뀐 법에 혜택을 크게 받지는 않아요. 하지만 우리 아들을 처음 학교 보내면서 내가 힘들었던 거나, 매 학년 바뀔 때마다 다른 엄마들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자식 교육시키려고 하는 우리가 죄인이 아닌데 마치 죄인처럼 고개 숙이고 지내는 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부모들이 자기 권리를 이야기할 때 당당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죠.”라고 한다. “아이들의 권리가 법으로 만들어지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권리가 되니까 부모들도 아이들도 더 이상 죄인처럼 지내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우리 아들이, 우리 후배 아이들이라도 조금 편안히 학교 다니고 공부하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하게 된 거죠. 교육을 받아야 사회에서 당당하게 살 수 있으니까. 교육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사회에 나가기도 힘들고 자립생활하기도 힘드니까. 교육은 가장 당연한 것이라 생각해서 법 제정 운동에 동참하게 된 것이죠.” 장애인교육권연대는 2005년부터 50여 차례 지역 순회 간담회를 진행하면서 장애인교육지원법안을 만들어 갔다. 이 법안에는 전국 각지에서 장애인 학생, 부모, 교사 등이 경험한 현재 학교특수교육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과 더 이상 장애로 인해 교육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생겨나지 않게 하는 생애 주기별 교육지원체계 등이 담겨있다. 장애인교육권연대는 이 법안을 가지고 국회를 돌며 의원들에게 법안 발의를 부탁했고, 국회의원 229명이 이 법안 발의에 동의했다. 장애인교육법안은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특수교육진흥법 전부개정안을 중심으로, 그동안 나경원, 구논회, 김우남 등 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특수교육진흥법 일부개정안 8건과 병합심사됐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총 9건의 법 제·개정안을 묶어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안’으로 만들어 냈다. {FILE:5} ⓒ 프로메테우스 김유미 본회의를 통과한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안’은 특수교육에 있어서 유치원, 고등학교 과정을 의무교육으로 정하고, 장애 조기발견체제를 구축해 장애영아에 대한 교육은 무상으로 지원하게 하고 있다. 또한 고등교육권의 보장을 위해 대학의 장에게 장애학생지원센터의 설치를 의무화하게 하고, 편의 제공도 의무화하도록 했다. 또한 국가나 지자체가 장애성인을 위한 평생교육시설을 설치하게 하는 등 장애를 가진 사람이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생애주기별 교육지원 체계를 확립하고 있다. 또한 현재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특수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특수학급당 학생 수 정원을 낮추어 정하고, 특수교육대상자들이 특수교육 외에도 가족지원, 치료지원, 보조인력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서비스’ 제공을 의무화했다. 윤종술 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는 이번 법 제정의 의미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우리가 그동안 요구해온 것들이 법제화했다는 것, 30년 묵은 특수교육진흥법을 폐지하고 장애인의 권리를 법으로 만들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법의 제정으로 장애인의 교육권을 찾는 운동이 종지부를 찍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에 선다는 겁니다.” “또 다른 의미를 찾자면 우리 장애인 부모들이 자신감을 가졌다는 거예요. 3년간 투쟁해서 법을 만들어 냈잖아요. 자기의 투쟁으로 내 아이가 학교 안에서, 지역사회 안에서 통합돼 살 수 있게 됐다는 그런 자신감을 부모들이 갖게 된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윤종술 공동대표의 설명이다. 윤 공동대표도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버지로, 장애인교육지원법을 국회로 보내고 법 제정을 요구하며 30일 넘게 단식농성을 해온 이들 중 한 명이다. 윤 공동대표는 앞으로 제정된 법이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법 시행령, 시행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법의 원칙을 강제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후 각 지역에서 법을 강제해 나가기 위한, 각 교육청을 상대로 장애인 교육예산을 확보하는 등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교육권을 찾을 수 있는 운동들을 계속 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공동대표는 “이제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할 첫 출발점에 선 것이죠. 법은 바뀌었는데 실제 현장이 안 바뀌면 아무 소용이 없잖습니까.”라며 “앞으로도 계속 투쟁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Copyright 2004-2007 ⓒ prometheus All right reserved. > 김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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